스티브잡스에 대한 기록 iCon

어린시절, 늘 우는 소리를 하는 외톨이, 시간낭비라 생각되는 숙제는 손도 안대고, 퇴학을 당하게 된다. 중학교는 불량아들이 우글거리리는 곳, 트랜지스터 등을 가지고 노는 것이 행복한 아이. 깡마르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전자기기에 대한 집중력과 관심만은 남달랐다.잡스는 텔레비전을 싫어해서 보지 않는다. 그에게 텔레비전은 가장 정신을 좀먹는 기술이다.

대학시절 동양철학에 심취했다. 스티브의 첫학기 성적은 형편없었다. 그냥 평범한 말은 그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는 자동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진실을 거부했다. 모든 것을 직접 해보고 싶어 했다. 스티브는 자신을 증명해보여야 한다는 불안감이 마음 깊이 있었다. 아무래도 고아출신이었기 때문인것 같다.

스티브는 선불교에 빠져 있었다.
선불교는 수행자가 스스로 종교에 입문하는 방식으로 안내자가 필요로 하지 않았고 이 점이 스티브의 마음에 들었다. 그는 영적 스승인 코빈 곁에서 몇년 동안 공부를 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나중에 코빈은 잡스의 두번째 회사인 넥스트의 공식적인 ‘로시'(존경하는 스승)가 되었고 스티브의 결혼식을 집전하였다. 이 스승의 비밀은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마음 속에 떠오른는 대로 대답하는 능력에 있었는데 이것은 스티브에게도 평생의 습관이 되었다. 그의 경영 스타일이 코빈에게서 영향 받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여행은 보상이다’ 같은 선문답은 스티브의 진리감각에 호소력을 발휘했다.

스티브의 가장 강력한 설득방법은 –
하루에 3번씩 전화를 하는 것과, 만나면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부품을 외상으로 얻을 때도 그랬고, 레지스매키너에게 애플 광고를 해 달라고 조를 때도 통했다.

애플이 주식회사가 되면서 –
스티브잡스의 두가지 기질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한편 늘 조바심을 내기 시작한다. 왜 일이 지연되는가에 대한. 애플 2가 나올 즈음, 워즈와의 사이가 갈라지기 시작한다. 항상 최종 사용자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좋았지만 너무 거만을 떨었다.

알 수 없는 복잡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상 ‘올바른 것’에 대한 판단력은 잃지 않았다. 회사가 손해를 보더라도 사용자에게 옳은 것, 그의 까다로운 성격이 그나마 용인된 것은 그가 옳았던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화를 자주 돋우긴 했지만, 꿈과 문화의 창조자란 존경을 받았다.

회사가 승승장구해도 스티브는 기쁘지 않았다. 그것은 워즈가 만든 애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티브의 컴퓨터라고 인정되는 제품을 내놓고 싶었다. 리사로 명명된 프로젝트는 제록스 PARC에서 본 마우스 방식 인터페이스와 화면 그대로 출력이 되는 형식을 갖추지만 시장에서 실패한다.

스티브는 주식상장을 통해 1억달러가 넘는 갑부가 된다. 하지만 인도여행을 같이 하고 동거동락한 댄 코트키에겐 주식을 주지 않았다. 스티브에게 가장 중요한 항목은 충성심과 똑똑함이다. 스티브의 세계에 속한다면 모든 면에서 그에게 충성해야 한다.

1979년 회사에서 특정임무가 없는 임원에 따분해하던 잡스의 눈에 래스킨이 만든 매킨토시가 눈에 들어온다. 래스킨은 그것을 토스터라 불렀다. 추가장치가 필요 없는 자급식 기기, 그것 하나만 사면 다른 것은 필요 없는 장치.

스티브는 주위 사람들이 자신의 엉뚱한 현실감각을 믿도록 만드는 능력을 지녔다. 아주 빠른 응답, 재치 있는 문구, 가끔씩 아주 독창적인 통찰력이 혼합된 것이었다. 스티브는 그런 것을 뒤섞어 사람들이 자기 말에 넘어가게 만든다.

스티브는 자질구레한 세부사항까지 챙기는 마이크로매니저였다. 덕분에 최종결과는 좋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은 고통스러웠다. 스티브는 안된다는 대답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스티브는 수천마일 떨어진 지평선 너머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가는 길목 길목의 자세한 지형은 제대로 볼 줄 몰랐다. 이것이 그의 천재적 재능이자 몰락의 원인이었다.

1985년 스티브는 애플에서 어떤 자리도 얻지 못하게 된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생각한다. 난 권력지향적인 사람은 아니다. 애플이 잘되기를 바랄뿐이다. 성년의 삶 전체를 애플에 바쳤다. 지금도 애플을 위한 길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빗자루로 바닥을 쓰는 일도,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이라도…하지만 1986년 초 달랑 한 주만 남겨두고 주식을 모두 처분한다. 한 주를 남겨둔 것은 연례보고서를 계속 받아보기 위해서였다. 스티브잡스는 숱한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전쟁에선 졌다.

스티브의 협상스타일은 언제나 자신이 유리한 입장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쥐고 있는 패가 엉망일 때도 그런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 스티브는 언제나 과단성과 뻔뻔함으로 살아왔다. 가끔은 그런 겁없는 과감함 때문에 좀 더 조심성 있는 사람들에게 된통 당하고 말았지만, 그래도 그가 계속 물 위에 떠서 헤엄칠 수 있었던 건 그런 과단성과 뻔뻔함 덕이었다. 그보다 훨씬 조심스런 사람들은 이미 물에 빠졌거나 너무 멀리 가다가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1998년 1월, Think Different란 가치를 내걸고 스티브잡스는 애플 CEO로 돌아와서 맥월드 엑스포에서 연설한다. 애플을 흑자로 돌린 주인공인 어밀리어의 업적은 모두 뭍혔다. 그는 토이스토리 시사회에서도 토이스토리를 만들어 낸 래스터와 공유하지 않고, 혼자 무대를 독차지했다. 스티브를 조롱할 여지는 많다. 하지만 그는 아이콘이다.

스티브잡스와 아이스너는 둘다 닮은 구석이 있었다. 둘 다 밑바닥에서 정상까지 올라왔고 뛰어난 지능과 비상한 통찰력을 소유했으며 타고난 사업감각과 비범한 인재들을 다루는 재주가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충성심을 가장 귀한 덕목으로 취급하면서 누군가 오랜 믿음을 배신하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보복을 가했다. 누군사 무가치하다고 생각되면 오래 알고 지내던 사이라도 매정하게 잘랐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본능을 믿었고, 작은 팀을 조직화 해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밀어붙여서 화려한 스타일과 혁신 (혁명이 아닌)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을 가졌다.

어느 인터뷰 자리에서 인터넷 창업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 문제는 인터넷 사업을 금방 팽개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사업을 하다보면 해고도 하고 계획도 취소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극심한 고통과 절망을 느낀다. 그런데 내가 누구인지, 내 가치가 어느정도인지를 알게 되는 것은 바로 그런 순간이다. 창업으로 엄청난 부자가 된 사람들을 봐 왔지만, 자기를 속이고 가장 보람 있는 일을 하지 않은 것 같다고, 그래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지도 못할 것이고, 새로 얻은 부를 똑바로 활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느낀다.

우리가 팜을 만들지 않는 걸 두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게 정말 쓸모 있는지 자문하기 시작했다. 회의실에 그것을 들고 나타나는 사람이 1년 전에는 50%였으나 지금은 10%도 안된다. 누가 억지로 문화를 만들수 없는 것이다.

2주 동안 스티브는 가족들과 세탁기를 고르는 일에 전념했다. 결국 유럽산을 선택했는데, 이유는 미국에서 그 제품을 사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 새 세탁기는 지난 몇년 동안 우리 가족이 집에 들여놔서 정말로 행복했던 물건 가운데 하나다. 이것은 내가 오래 봐왔던 어떤 하이테크 제품보다 훨씬 나를 설레게 했다.

에필로그

서른 살의 미숙한 젊은이는 컴퓨터 시장을 개막하는 컴퓨터를 만들었다. 애플에서 쫒겨난 뒤 애플의 마법이 하드웨어에 있다고 생각해서 넥스트를 차렸고, 픽사를 하드웨어 회사로 잘못 생각하고 그것을 사들이기까지 했다. 결국 회사의 진정한 것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인재들이란 것을 느끼고 소프트웨어에 눈을 뜬다.

그는 이제 새로운 전쟁을 시작한다. 최고의 싸움이 그렇듯 이번 싸움도 개인적인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를 이기려 한다. 이 싸움은 세익스피어적인 것이며 근본적인 것이고 감정적인 것이다. 그 싸움을 지켜보는 것은 21세기 벽두의 가장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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