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미디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에는 도대체 표정이 없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화려한 간판이 내걸리지만 그것이 뿌듯한 즐거움을 선사하진 않는다. 볼거리는 많지만 눈길이 머물만한 대상이 없는 것이 우리의 도시경관이다.

도시가 커뮤니케이션을 북돋는 환경이 되도록 하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나아가 도시 자체가 삶의 기쁨을 불러일으키는 미디어가 될 수는 없을까? 모든 공간이 경제적인 이윤 창출의 대상으로 평면화된 상황에서 ‘장소’에 대한 질적 감각을 회복하고 거기에서 체감되는 부피로 의미세계를 창출해가고자 하는 열망의 기록이다.

몸이 머물러 있는 공간과 거기에 놓여 있는 사물들에게 말을 걸면서 자아를 새롭게 만나고, 그 마음의 깊이에서 타자를 발견하는 삶의 생태학, 바로 그것이 이 책의 주제이다.

공간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면서 동시에 사회를 구성하는 실천의 형식으로 인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의미가 생성되고 공유되는 장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이런 공간관은 디자인의 존재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개개의 대상 자체의 조형적 완결성보다는 그것을 둘러싼 맥락 전체를 아우르면서 디자인의 목적을 헤아리고, 사용자의 삶도 함께 시야에 넣으면서 그것과 사물 사이의 관계를 디자인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한국은 끊임 없이 부수고 새로 지어대기만 한다. 이는 개개인의 정체성이나 공동체의 소속감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정신이나 문화는 진공상태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공간을 매개로 형성되고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인생의 항로에서 만나는 이런저런 체험들이 추억으로 누적되고 그 지층에서 자아의 고유한 본질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도시에는 그러한 기억들을 담아둘 수 있는 그릇이 자꾸만 사라져 간다. 몸과 몸이 부딪혀 삶의 다채로운 사연들을 만들어내는 만남, 그 만남을 북돋우는 공간환경을 디자인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당장 자기와의 이해관계가 없으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상황에서 공공공간은 황량하고 위험하며 더러운 장소로 전락한 것이다. 지역이 갖는 의미를 되묻는 작업에서 출발하면서, 그 공간을 풍요롭고 윤택하게 가꿔가기 위한 전략 그리고 그것을 실행할 주체 형성 방안을 모색하는 것.

지역을 활성화 하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차원에서 시설을 정비하거나 매력적인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을 넘어서, 궁극적으로 거기에 담기는 삶 그 자체를 새롭게 디자인 하는 것이다.

통신망, 화폐, 법률 등을 매개로 하는 표준시스템은 광범위한 지역을 아우르면서 질서를 실현해왔다. 전통적인 장소성의 고유한 맥락들을 해체하면서 공간을 균질화시켜 왔다. 그와 함께 삶의 다양한 영역들을 분해하여 대규모로 집적시켜 재배치함으로써, 사람들은 공간을 매개로 하여 독자적인 의미를 생성할 수 있는 자원은 고갈되어 왔다.

21세기 도시공간을 구상하는 작업의 핵심은 공간의 사회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은 사회과학에서의 공간 패러다임 대두와 맞물린다. 사회과학에서 공간과 사회에 대한 논의는 여러 갈래로 발전했는데 모든 이론들은 공간이라는 것이 단순히 물리적 장치나 지리적 배열이 아닌 그 이상의 사회적 함의를 갖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공간과 사회의 관계는 이분법적으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David Harvey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도시를 적절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학적 상상력과 지리학적 상상력을 함께 포섭하여 그것들을 기초로 만들어진 개념틀에 입각해야 한다. 사회적 행동은 도시가 취하는 일정한 공간형태와 관계 지어져야 한다.

이것은 신도시사회학자 E. W. Soja의 사회이론에서 공간성 ‘spatiality’라는 개념으로 명료화된다. 공간성이란 공간의 사회적 생산과 사회의 공간적 편성을 매개하는 것을 뜻하는데 여기에서 공간이라 함은 사회의 재생산 과정의 ‘산물’이자 동시에 ‘매개체’이다.

공간은 단지 대상의 객관적 질서나 인간의 주관적 인지 체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되면서 동시에 사회를 구성하는 실천의 형식이라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공간이라는 것은 인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의미가 생성되고 공유되는 장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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